기고 191

제천을 떠나오며[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제천 가는 길은 멀기만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던 도시였다. 제천에서 30분만 더 가면 강원도라고 했다. 강원도라고 하니 그 거리가 실감이 났다. 도착해 보니 어두운 밤이었다. 기온은 차가워 몸을 움츠리게 했다. 나는 제천 장례식장에서 몸부림을 치며 울었다. 아무것도 입에 넣을 수 없을 만큼 기진맥진했었다. 입관식에서 본 망자는 곱게 화장해 생전처럼 평온한 모습 그대로였다. 주머니도 없는 삼베옷으로 차려입고, 평생 종종거렸던 발은 삼베 꽃버선 신고, 손 덮개를 씌운 손은 가슴 위에 얹고 잠자듯 누워있었다. 향년 64세 생애를 마감하고 먼저 가는 올케언니를 어떻게든 붙들고만 싶었다. 올케언니와 가족으로 살아온 세월이 40년이나 되었으니 그 정을 못 잊어 몸부림치는 것만은 아니었..

기고 2022.05.11

봄이 오는 소리[미래교육신문 최성광기고]

세상이 온통 봄기운으로 가득하다. 새하얀 목련이 귀하고 부드러운 꽃잎을 눈부시게 피어 올리고, 연분홍 벚꽃은 소담소담 피어 온 세상을 환하게 만들고 있다. 아름답고 찬란한 꽃잎은 지고 난 자리에 연둣빛 여린 잎들이 수줍은 듯 얼굴을 빼꼼히 내밀며 가지 곳곳에 생기를 주고 있다. 봄이 왔다. 봄은 긴 겨울의 끝에 어느샌가 우리를 찾아왔다. 혹한의 추위와 고통이 지난 후 찾아오는 따스한 계절. 겨울은 모든 것이 움츠러들고 생기가 사라진 멈춤의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생명체는 숨죽이며 다시 피어날 봄을 기다린다. 그렇게 봄이 우리에게 왔다. 비단 봄은 계절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봄은 오랜 기다림 끝에 민주주의로 찾아 왔다. 탄압과 독재의 시기, 대중은 폭압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며 저..

기고 2022.04.20

닭갈비[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

북한강 푸른 물에 반달모양으로 떠있는 남이섬에 발을 디뎠다. 경기도 가평에 위치하나 주소는 강원도 춘천이라는 남이섬에는 아직 찬바람이 가시지 않은 이른 봄인데도 많은 사람들로 박신거렸다. 그중에는 상당수의 외국인도 눈에 띤다. 남이섬이 국내 TV드라마에 등장하여 그 드라마가 외국에서 방영되었기 때문이란다. 2000년대를 전후한 시기부터 한국의 영상, 음악, 문화가 아시아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켜 한류열풍이란 신조어가 생겼다는데 그곳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강 하구의 삼각주처럼 남이섬은 강물에 떠내려 온 흙과 모래가 강폭이 넓고 경사가 완만한 곳에 쌓여 형성된 듯하다. 남이섬이란 이름은 그곳에 조선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등 비범한 능력을 가진 명장으로 26세에 병조판서에 이르렀으나 이를 시기..

기고 2022.04.20

화재로부터 안전한 전통시장 만들기[미래교육신문 조상호기고]

전통시장은 우리 문화가 숨 쉬고 있는 역사의 장소이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문화쇼핑 공간이기도 하다. 알뜰한 가격에 질 좋은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전통시장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지만 반면에 미로형 골목에 소규모 점포가 밀집된 형태로 전기와 가스의 시설이 노후와 관리 미흡으로 작은 부주의에도 화재발생 위험이 높은 실정이다. 지난 2021년 12월 서울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화재, 같은 해 9월 경북영덕 전통시장 화재로 48곳의 점포가 전소되어 많은 재산피해가 발생하였다. 국가화재정보통계에 의하면 최근 3년간 전국의 시장에서 178건의 화재로 805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전통시장은 시장진입로는 협소하고 주변의 무질서한 주정차로 소방차량의 접근이 어려워 초기진압에 실패하게 되면 대형화재로..

기고 2022.04.20

어린 왕자[미래교육신문 최서윤기고]

“처음에는 나한테서 조금 떨어져서 바로 그렇게 풀밭에 앉아 있어. 난 곁눈질로 너를 볼 텐데, 너는 말을 하지 마. 오해의 근원이야. 그러나 하루하루 조금씩 가까이 앉아도 돼......”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이라는 별칭이 있다. 왕자는 자신의 별을 떠나 여행을 다니면서 각자의 생각과 욕심에 사로잡혀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물(어른)들을 만나게 된다. 별에 혼자 살았던 왕자는 다양한 인물들을 접하면서 세상을 알아간다. 순수함을 잃어간다고도 볼 수 있다. 왕자가 만났던 여러 인물 중 왕자의 마음을 깨닫게 한 것이 여우다. 위 문장은 여우가 왕자에게 자신의 친구가 되어 달라며 했던 말이다. 소중한 것과 함께 있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하루하루 조금씩 다가서야..

기고 2022.04.20

가출[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내 나이 육십에 가출했다. 그것도 대독이 터진다는 정이월이었다. 말리는 아들에게 이대로 살다가는 내 몸 안에 병을 키워 죽을 것 같으니, 험하게 살더라도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밖은 어둡고 칼바람이 불었다. 눈발까지 더해 밤공기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하필이면 이 추위에 누가 밀어내는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에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뒤척이며 지새는 밤은 서럽고 억울했다. 이번만은 기어코 내 뜻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마음 놓고 살만하면 선거철이 돌아왔고 남편 병은 도졌다. 그는 몇 년 전 다시는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일도 무시해 버렸다. 온갖 이유를 만들어 다시 나서야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것이 남편의 그 소리였다. 이젠 서로 간에 말이 필요 없었다. ..

기고 2022.04.20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미래교육신문 최성광기고]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사계’를 작곡한 안토니오 비발디의 칸타타 성악곡이다. 세상에 참 평화는 고통과 결핍 속에서 느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요즘처럼 ‘평화’라는 말이 새삼스러울 때가 있었을까 싶다. 국어사전에 평화는 ‘평온하고 화목함,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하거나 또는 그런 상태.’라고 나와 있다. 평화는 사전적 정의처럼 사람들이 느끼는 정서적 안정과 평온함을 뜻한다. 인간을 포함해 모든 사물은 평온과 평화를 좋아한다. 안정감 때문이다.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가는 것은 긴장과 변화로 인한 고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단 하루도 평온함이 없는 것 같다. 연일 매스컴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확진자 수와 경제위기,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전쟁 이야기,..

기고 2022.03.23

오솔길[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

예전에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길이 오솔길이다. 오늘날처럼 차량이나 농기계가 흔치 않았던 시절에는 걸어 다니며 모든 일을 처리하였다. 논밭으로 일하러 가면서도 그저 지게에 쟁기를 짊어지고 소를 몰고 걸어가면 되었으니 자연 여기저기 오솔길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농사에도 차량이나 농기계 아니면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경지정리 된 펀더기뿐만 아니라 시골의 웬만한 골짜기까지도 넓은 길이 나 있으니 오솔길이 사라지는 것도 당연하다. 배낭을 짊어지고 산에 오르지 않는 한, 시골 마을의 숲정이에서 조차도 오솔길을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하기 위해 고향마을 뒷산에 자리한 산소엘 갔다. 매년 추석이면 가는 길이지만 그 때마다 애를 먹는다. 예전에 있었던 오솔길이 흔적조차 없어졌기 ..

기고 2022.03.23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미래교육신문 최서윤기고]

“위로는 단지 뜨거운 인간애와 따뜻한 제스처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나를 위로할 수는 없다. 더 과감히 말하면, 위로받는다는 것은 이해받는다는 것이고, 이해란 곧 정확한 인식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위로란 곧 인식이며 인식이 곧 위로다. 정확히 인식한 책만 정확히 위로할 수 있다.” 이 책은 신형철 선생님이 쓴 책으로 슬픔을 공부해서 슬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면서도 끊임없이 무언가 의지할 곳을 찾는 것 같다. 나 또한 나를 믿지만 무언가 불안하고 외로울 때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 싶어진다. 내가 엄마에게 위로받고 싶을 때, 엄마는 대부분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주지만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실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위 문장은 ..

기고 2022.03.23

폐차장[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우리 마을에서 얼마쯤 걷다 보면 폐차장이 있다. 주인으로부터 버림받고 차량 번호도 없이 빈 몸체만 있었다. 김 한 장 틈도 없이 빼꼭히 세워져 있는 모습이라니. 어떤 차는 험하게 일그러진 차도 있었지만, 그런 차는 이미 사망 선고를 받아 제2의 장소로 떠나버렸다. 폐차장 공터에 차들은 다른 활용을 위해 모아 놓은 것 같았다. 이름도 사라졌고 원래의 차량 색깔도 빛이 바래 윤기라고는 없었다. 영혼이 빠져나간 듯 멍한 채였다. 예전에 주인으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았을 때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주인의 사랑을 받을 때는 온갖 장식을 하는가 하면 남의 눈에 험해 보일까 봐 왁스까지 칠해 윤을 냈을 것이다. 나도 차를 처음 갖게 되었을 때는 온 정성을 다했다. 먼지를 뒤집어쓴 차는 세차를 하고 나면 내 몸을 ..

기고 2022.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