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에서 얼마쯤 걷다 보면 폐차장이 있다. 주인으로부터 버림받고 차량 번호도 없이 빈 몸체만 있었다. 김 한 장 틈도 없이 빼꼭히 세워져 있는 모습이라니. 어떤 차는 험하게 일그러진 차도 있었지만, 그런 차는 이미 사망 선고를 받아 제2의 장소로 떠나버렸다. 폐차장 공터에 차들은 다른 활용을 위해 모아 놓은 것 같았다. 이름도 사라졌고 원래의 차량 색깔도 빛이 바래 윤기라고는 없었다. 영혼이 빠져나간 듯 멍한 채였다. 예전에 주인으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았을 때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주인의 사랑을 받을 때는 온갖 장식을 하는가 하면 남의 눈에 험해 보일까 봐 왁스까지 칠해 윤을 냈을 것이다.
나도 차를 처음 갖게 되었을 때는 온 정성을 다했다. 먼지를 뒤집어쓴 차는 세차를 하고 나면 내 몸을 씻은 듯 개운하고 기분이 좋았다. 공영 주차장에 주차할 때도 행여 다른 차들이 스쳐 흠이라도 날까 봐 이리저리 살펴 한갓진 곳에 주차했다. 운전이 서툰 탓에 후진 주차하다 차를 들이받았을 때는 어찌나 마음이 아팠던지, 몇 번을 보고 마음 아파했다. 상처에 피가 나는 것처럼 내 마음에 통증이 났다. 속히 원상 복구하려고 차 병원에 다니며 진단을 받았다. 어떻게 하면 더 감쪽같이 원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금액은 얼마나 될지 비교했었다. 내 몸에 그리 큰돈을 드리는 일은 쉽게 결정하지 못하면서도 차를 치료하는 일에는 어쩔 수 없다 여겼다. 집에 주차 공간이 따로 없어 한뎃잠을 재워야 하는 일이 마음 짠했다. 차가 낡아 간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내 몸이 늙어가는 것처럼 씁쓸했다. 어쩔 수 없이 이별을 선고받았을 때의 서글픔은 형제들과 생이별 하는 것만큼이나 마음 시린 일이었다. 하루라도 미뤄 보고 싶어 이 핑계 저 핑계로 연장했다. 마침내 새 차와 교환하기로 했다. 중개인은 새 차가 어디에 있으니, 폐차는 열쇠와 함께 두고 가라고 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내 차를 두고 새 차로 옮겨 타려니 형제를 배신하는 것처럼 뒷모습이 부끄럽기만 했다. 내 차도 폐차장 차들처럼 두고 새 차를 타고 떠나왔다. 나는 지금도 예전에 내 차량 번호와 마주할 때면 반가움에 눈이 번쩍 뜨였다. 물론 전체 번호가 같지 않았다. 손을 흔들어 주고 싶을 만큼 약간의 흥분이 일렀다. 폐차장 차들이 한 방향으로 빼곡히 모여 있는 것을 보면 무덤 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요즘은 폐차장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내 어머니가 계시는 요양원이 떠올랐다. 나도 남들처럼 어렸을 때는 어머니를 퍽도 좋아했다. 막내로 자라 어머니가 없다면 못 살 것 같았다. 어머니가 가는 길은 어디든 따라나서려고 안달했다. 그런 나를 보고 이웃 어른들은 너무 뜻 받들어 그런다고 어머니를 비난도 했다. 아무리 추운 날도 어머니 손만 잡으면 그 매섭던 추위도 다 사라졌다. 학교 다닐 때도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발돋움을 하고 우리 집을 살폈다. 방문은 열려 있는지, 뒤뜰 굴뚝에는 연기가 나는지. 누가 있는 것보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음식 만들기를 기대했다. 어머니가 나를 반기면 먼 길을 걸어오느라 지쳤던 몸도 날아갈 듯 가뿐해졌다. 어리광부린다고 형제들에게 구박당하고 서럽기 짝이 없어 울음을 짓누르고 있다가 어머니의 무명옷자락만 보아도 마음이 풀려 대성통곡이 나왔다. 아직은 철없는 어린것을 나무랐다고 내 역성이라도 드는 날에는 어머니의 곁은 철옹성처럼 든든하기만 했다. 그런 어머니의 곁이었지만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대도시로 떠날 때는 어머니도 나도 그 모습이 아주 작아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뒤돌아보았다. 어머니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았던 세상이었지만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다 보니 어머니의 존재는 작아졌다. 부모님이 애써 농사지어 보내주는 용돈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법에 익숙해져 갔다. 우주 같았던 어머니를 향해 있던 마음은 차츰 닳아 갔다. 어린 날 내가 어머니를 목마르게 찾았듯이, 어머니는 타지에서 살아가는 나를 몹시 그리워했다. 나는 바쁘다는 이유로, 혼잡한 교통을 핑계로 어머니 뵙는 일에 게으름을 피웠다. 어머니의 젊었던 기운은 내게로 옮겨져 왔고, 어머니의 힘은 미약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가정을 이루었고 어머니는 뒷전으로 밀렸다. 나는 고장이 잦은 차를 거부하듯이 병약하고 기억까지 희미해져 가는 어머니를 짐처럼 여겼다.
그런 어머니를 요양원에 맡기고 나는 집을 향해 꾸역꾸역 들어섰다. 이제 나도 나이가 더해 갈수록 언젠가는 폐차로 버려지는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헤아려보았다. 한 생을 밀려나는 그 시간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순응하며 세상에 대한 집착에서 놓여나는 마음을 지녀야 할 거라고 타협해 보곤 했다.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내 청춘 피고 지는 꽃잎처럼 나는 가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라는 노랫가락이 왜 이렇게 오늘은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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