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마지막 빚[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미래뉴스입니다 2022. 6. 15. 15:49

김   미 수필가

어찌 인연이 되어 어르신들의 문해 강사를 수년째 하고 있다. 문해교실 대상자 어머니들은 대부분 농어민으로 어려운 시대에 태어났다. 몸을 농기구처럼 부리며 한 가정을 일구어 온 사람들이었다. 억세게 농사를 짓다 보니 몸은 고장 나 몇 번에 걸쳐 수리했다. 완전한 회복이 불가능하다 보니 어머니들은 바로 걷을 수가 없다. 아무리 용써도 한쪽으로 쏠려 불안한 게걸음을 걷는다. 그래도 못 배워 서러웠던 일을 생각하며 한 자라도 배워야 한다는 각오만은 대단했다. 공부시간에 누군가 사담이라도 할라 치며 시끄러워 집중이 안 된다며 단속하는 소리가 더 소란스럽다. 막판에 선생님은 뭐 하느냐고, 이럴 때는 칠판이라도 꽝 내려쳐 조용히 하게 하라고 엄포를 놓는다. 실은 그럴 줄 몰라 모른 체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업 중간에 분위기와 맞지 않게 한마디씩 하는 어머니는 우리 반에서 최고령 92세 어머니시다. 어머니는 예의도 바르고 한글도 잘 안다. 그러나 귀가 잘 안 들린다. 보청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 성능이 못 미칠 때도 있다. 그런 어머니를 단속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어머니들의 속성은 당신들이 말할 때는 당연한 말이고 남의 말은 쓸데없는 소리로 받아드렸다. 나는 어머니 한 분 한 분이 유리그릇 같아 그저 조심스럽다. 가난하고 어려운 시대를 오로지 몸 하나로 이끌어 나와 어머니들 몸이 닿아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작은 이야기 하나라도 우리 지역의 역사로 기록해 두고 싶은 욕심이 일곤 한다. 오늘도 내 차에 같이 탄 어머니 이야기가 가슴 속에 남아 나를 뒤돌아보게 했다. 그 어머니 젊어서는 남편이 남에게 세상없이 관대했지만, 자녀들과 어머니에게만은 혹독하기 그지없었다.

어머니는 자녀들을 입히고 가르쳐야 해 그 시대에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바다에서 나오는 해산물 잡기, 날품팔이, 주방장, 뱃사공까지 하며 살았다. 어머니는 당신이 했던 고생은 묻어 버리고 자녀들이 잘사는 그것만이 자랑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읍내에 나갈 일이 있다며 나섰다. 어머니 목소리는 흥분되어 있었다. 오늘은 삼십 년 동안 짊어진 빚을 어제까지 다 마련해 내가 죽기 전에 빚 갚는 날이라는 거다. 남편은 죽는 날까지 돈 한 푼 벌어온 적이 없었다. 남편이 갑자기 죽고 난 후, 생전에 진 빚이 이천만 원이나 되었다. 죽어라 벌어 천만 원은 갚았다. 나머지 천만 원은 고스란히 남았다. 그 빚이 당신 발걸음을 붙잡는 것 같아 숨을 쉬고 살 수가 없었다. 그때 어렵게 대학까지 가르쳤던 아들이 어머니 손에 천만 원을 주었다. 어머니는 남의 아들처럼 공부만 할 수 있게 뒷바라지도 못 했는데 천만 원을 차마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들은 엄마 빚이 내 빚이니 갚으라고만 했다.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그럼 세월이 흐르더라도 꼭 갚으마고 했다. 딱 삼십 년 만에 빚을 청산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아들을 읍내에서 만나기로 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돈을 받은 날부터 하루라도 빨리 빚을 갚으려고 몸을 아끼지 않았다. 돈이라는 게 마음대로 모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 무렵 자녀들이 결혼해 치다꺼리로 쓰게 되었다. 그래도 모으다 보면 언젠가는 갚겠지 하고 쉬는 날 없이 품을 팔았다. 때론 난전에서 생선도 팔았다. 빚을 갚으려고 독한 마음을 먹으니, 아프면 죽을까 겁이 났다. 돈을 모으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았다. 오매불망하던 천만 원을 모았다. 그런데 그 무렵 큰딸이 집도 없이 고생만 하고 살았다. 그 딸이 사고자 목젖이 타는 집이 있었다. 천만 원이 부족해 낙담하는 모습을 차마 모른 체할 수 없었다. 결국, 어머니는 그 천만 원은 큰딸 집 사는데 주었다. 아들에게 진 빚은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그 후, 긴 세월 동안 또 그 마음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오늘에야 마음대로 죽을 수 있게 되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거룩해 보였다.

부모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베풀어 주건만, 자식에게 빌린 돈 때문에 죽음조차 걱정하는구나 싶었다. 지금은 이 세상에서는 찾을 수도 없는 내 어머니에게 지은 죄가 크게 느껴졌다. 내 친정어머니도 내가 주는 용돈을 단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가끔 용돈을 드리고 이번에야 무사히 가져가는구나 하고 내심 흡족해할 무렵 꼭 전화했다. 찬장 어느 그릇 아래 내가 준 용돈이 거기 있다며 살림에 보태라고 당부했다. 늙은이가 무슨 돈이 필요하겠냐고 했다. 밤참을 설치며 일하는 너를 보면 항상 마음이 짠하다고 했다. 여태껏 살아오며 나를 짠하다고 말해 주는 사람은 어머니밖에 없었다. 되려 어머니가 꼬깃꼬깃 전해 준 용돈을 받아 썼던 기억만이 남아있다. 부모는 자식이 주는 용돈을 그 몸처럼 소중하게 여기는구나. 그런데 자식들은 그런 부모의 유산을 더 받으려고 안달뱅이를 하는 심보가 한없이 죄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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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빚

김 미 어찌 인연이 되어 어르신들의 문해 강사를 수년째 하고 있다. 문해교실 대상자 어머니들은 대부분 농어민으로 어려운 시대에 태어났다. 몸을 농기구처럼 부리며 한 가정을 일구어 온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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