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놀러 오며 상추 한 바구니를 뜯어 왔다. 부드럽고 연한 상추를 보니 밥맛이 당겼다. 얼른 먹을 요량으로 양념장을 만들어 놓고 상추를 씻었다. 한 잎 한 잎 씻다 보니 딱딱한 무엇인가 싱크대 아래로 툭 떨어졌다. 부드러운 잎 사이에 딱딱한 것이라니, 살펴보니 달팽이가 덤으로 함께 왔다. 씻던 일을 멈추고 달팽이를 한쪽으로 올려놓았다. 친구는 키득키득 웃었다. 농담을 좋아하는 그녀는 내 사정 알고 있기에 집 한 채 선물하려고 가져왔단다. 요즘 우리 부부는 집 때문에 고민이 많다.
그동안은 살림집이 따로 없었다. 이제는 집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남편은 살던 마을에 집을 짓고 싶어하지만, 갑자기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살던 곳이라 만만하게 보았다가, 엄두도 못 낼 형편이 되었다. 집 지을 만한 땅도 없다. 남편에게는 이 마을이 대대로 살던 마을이고, 나는 삼십오 년이나 살았다. 형편이 이러다가 보니 이 마을을 떠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괜히 서글퍼졌다. 철없이 상상하기 좋아하는 나는 가끔 마을 사람들과 이별하는 장면도 그려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가 떠난다고 하면 누군가 서운해하는 사람은 있기나 할까? 아니면, 무심한 표정으로 잘 가라고 할까. 누군가는 입을 뒤틀며 가든지 말든지 할까. 이런저런 경우도 없으란 법은 없다. 각자 마음속의 일이니 어쩌겠는가 싶었다.
그렇다면 미리부터 알려야 할까? 이삿짐까지 준비해 놓고 마지막으로 음식 대접하며 정중하게 고별인사를 드려야 할까? 인사 내용은 이런 식으로 써야 하나. 그동안 식구처럼 서로 보듬어 주어 고맙다고 하면 적절하나.
아직 집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으면서 그 고민부터 하고 있다.
몇 년 전에 팔았던 빈집을 다시 사고 싶어 사정해 보지만 어렵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집 때문에 이렇게 고민한 적은 처음이다. 좋은 집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물려준 집이 있었다. 어디든 나갔다가 돌아오면 집은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집이니 마음대로 해도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우리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이 시점이 되어보니 크게만 느껴졌다.
싱크대 난간의 달팽이는 지구를 밀듯 더디 가고 있다. 상춧잎 하나만 믿고 훌쩍 떠나온 달팽이처럼. 아파트는 이삿짐만 싸 들고 가면 간편하고 쉽다. 그러나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파트는 자연과 어울리는 재미도 없을 것 같았다. 문을 닫으면 이웃과는 단절이니 괜히 미리 짐작하면 쓸쓸해졌다. 자녀들까지 집을 다 떠난 마당에 빈집만 지키게 되면 어떡하나.
이런 고민에 빠져 허덕이는 나에게 자녀들은 아파트를 권했다. 이제 집을 지으려면 얼마나 신경 써야 할 일이 많겠냐는 것이다. 그 말은 맞았다. 주변에서도 나이 들어 전원생활 꿈꾸며 사는 이웃도 있다. 더러는 집 다 짓고 나면, 병 얻어 시름시름 앓게 된다며 말리는 이들도 있다. 말이 전원이지 집안을 가꾸려면 일꾼처럼 일만 해야 한다고 했다. 집안을 보기 좋게 꾸미다 보면 전원생활 즐길 만한 시간적인 여유도 없다고 했다. 설령 일꾼처럼 일하더라도 사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는 동안은 자식이 아니라도, 돌보는 이들이 있어야 살맛이 있지. 지금 가꾸는 텃밭도 내 관심만 기다리고 있다. 물 주면 싱그럽게 피어나고 커가는 것을 보는 재미는 감히 자식 거두는 재미에 버금갔다.
자연환경은 어떤가? 요즘 밤이 깊어가고 사람들 발걸음 소리가 잦아들 때, 개구리 돌림노래 소리는 얼마나 장관인가. 괜히 들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농가에서 계절의 변화는 귀만 열면 곤충들이 철철이 속삭인다. 깊은 밤 풀벌레 소리에 취하다 보면 잠 안 오는 밤에도 외롭지 않았다.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밤이면 환희의 기쁨을 선물로 받은 기분이었다. 시골에서의 밤은 내면을 깨우는 특별한 무대였다. 깊은 밤 개 짖는 소리마저 어떤 음률처럼 다가왔다.
지금 내가 기르는 닭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새벽녘이면 울어주는 수탉들의 울음소리는 시간을 헤아리며 하루를 꿈꾸는 재미가 있었다. 비가 오면 지붕을 타고 내려오는 빗소리는 또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은 집 생각으로 가득 찼다. 우연히 지나치는 볕 좋은 마을을 보면 고개가 쳐들어 졌다. 혹시 저 마을에는 우리가 살만한 집터는 없을까?
더디게 오체투지로 꾸역꾸역 집을 등에 지고 가는 달팽이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내가 머물 집을 찾아 촉수를 세우고 등에 집을 매달고 있는 달팽이는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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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iraenews.co.kr/news_gisa/gisa_view.htm?gisa_category=02060000&gisa_idx=38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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