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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지는 세월을 늦춰라[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

미래뉴스입니다 2022. 5. 11. 17:55

박 철 한

20대 초반에 청운의 꿈을 안고 공직에 들어선지 40년 만에 출구를 벗어나게 됐다. 세상에 태어나서 여태껏 걸어 온 길을 되돌아 볼 때 크게 사회생활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으리라. 그런데 주로 학창시절이었던 사회생활 이전 기간은 생각할수록 길게만 느껴지고 그보다 두 배 가까이 더 긴 사회생활 기간은 오히려 짧기만 하다.

학창시절은 사회생활보다 훨씬 오래되었음에도 그 기억 또한 더 생생하다. 즉 학교를 오가며 멱을 감거나 장난을 치던 초등학교 시절이나 중·고등학교시절의 기억이 그 이후에 경험한 사회생활의 기억보다 오히려 더 또렷하니 아리송할 뿐이다. 더구나 사회생활은 시간적으로 학창시절보다 훨씬 더 길었고 더 나중에 경험했다. 공간적으로도 첫 발령지인 경상북도 영양을 시작으로 총 4개 시군을 거쳤기에 그 과정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따라서 상식적으로는 사회생활 기억이 더 많고도 생생해야 하지만 오히려 머릿속에는 학창시절의 기억공간이 훨씬 더 넓고도 뚜렷하다. 그러니 같은 기간이라도 청년기 이전의 기억이 장년기 이후의 기억보다 양적으로 많고 질적으로도 더 우수하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면 왜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질까? 그 동안의 연구들을 종합하면 노화에 따라 생체시계가 느려지는 점, 기억 능력이 줄어드는 점, 뇌의 작동 속도가 느려지는 점, 새로운 자극에 민감한 쾌락 호르몬의 일종인 도파민 분비가 줄어드는 점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최근에 발표된 미국의 연구 논문에 따르면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물리적 시계시간(clock time)과 마음으로 느끼는 마음시간(mind time)이 같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 연구결과를 정리하면, “마음시간은 감각기관의 자극을 통해 만들어진 일련의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이미지를 더 빠르게 처리하기 때문에 자연히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엮어낸다. 하지만 신체가 노화하면 안구의 움직임이나 몸집 등 신체 특성의 변화로 뇌의 이미지 습득과 처리 속도, 이미지 변화 속도 등이 느려진다. 따라서 똑같은 물리적 시간에 감지한 이미지라도 청년기 이전에는 기억이 생생하므로 그 양이 많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기억이 흐려, 더 가까운 날에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잊히므로 이미지 양도 적어져서 그만큼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로 요약할 수 있다.

1996년 미국에서의 실험결과도 의미가 있다. 그 실험은 나이가 들면서 마음시간이 얼마나 빨라지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19~24세 25명과 60~80세 15명에게 마음속으로 180초를 재고 계측 시계를 멈추게 한 것이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183초에 멈췄으나 노인들은 220초에 멈췄다니 이는 노인들의 마음시계가 실제보다 22% 더 빨리 흘러갔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한 대학교수 설명도 이를 뒷받침한다. 즉 인간의 마음시간은 이미 살았던 기간의 비율에 좌우되어 스무 살의 후반기 10년, 마흔 살의 후반기 20년, 여든 살의 후반기 40년 마음시간이 모두 각각 같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스무 살의 후반기 10년보다 실제 기간은 각각 2배, 4배지만, 이미지 감지 비율이 각각 2분의 1, 4분의 1이어서 전체 이미지 감지 량이 같으므로 마음으로 느끼는 시간 또한 같을 수밖에 없단다. 그와 같은 과학적 원리는‘젊은 날의 경험은 평생 기억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만큼 소중하다’라는 것을 깨우쳐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마음시간이 곧 세월일 것인데 여든 살 노인에 있어 후반기 40년 세월은, 스무 살에 느꼈던 열한 살 이후의 10년 세월에 불과할 것이니 그야말로‘세월유수(歲月流水)’란 말이 뼈에 사무칠 수밖에 없다. 즉 시계시간이 아무리 길더라도 마음시간이 짧다면 마치 시간을 도둑맞은 것처럼 결국 짧은 인생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선 시대의 명기였던 황진이의 시조‘청산리 벽계수야’는“청산의 맑은 물아, 쉼 없이 흘러감을 자랑마라, 한 번 바다에 이르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밝은 달이 뜰 때 쉬어간들 어떠리.”라는 뜻이다. 또한 그 시조를 인생에 비유하여 해석하면“젊은이여, 부지런히 살아감을 자랑 마라, 한 번 늙으면 그만이니, 좋은 시절에 즐기며 쉬엄쉬엄 살아간들 어떠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계시간이 아닌 마음시간(세월)은, 부지런히 바쁘게 살수록 뇌의 이미지 량이 많아 느릴 것이고, 쉬엄쉬엄 한가하게 산다면 뇌의 이미지 량이 적어 오히려 더 빠를 것이니 아이러니가 아니랴.

결론적으로 세월을 늦추려거든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나이 들수록 뇌의 이미지 감지 능력이 떨어져 결국 세월이 빨라지는 것이라면, 잊힘을 감안하여 보다 더 많은 이미지를 머리에 채우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고 뇌가 감지할 이미지가 없다면 그 날의 마음시간은 제로(0)일 것이고 결국 세월에서 하루가 빠져나가는 셈이니 그만큼 빨라질 것이다. 하지만 흔히 육체적·정신적으로 체험·수고가 많은 날에 “오늘은 참으로 긴 하루였다.”라는 말을 한다. 따라서 나이 들수록 열심히 공부하여 뇌에 지식을 축적하고 분주히 움직여 뇌가 세상의 이미지를 많이 감지하도록 한다면 세월이 그만큼 발걸음을 늦출 것이어서 결국 인생도 길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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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지는 세월을 늦춰라

박 철 한 20대 초반에 청운의 꿈을 안고 공직에 들어선지 40년 만에 출구를 벗어나게 됐다. 세상에 태어나서 여태껏 걸어 온 길을 되돌아 볼 때 크게 사회생활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으리라.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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