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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러온 돌과 박힌 돌[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

미래뉴스입니다 2022. 2. 23. 16:40

박 철 한

가을 깊은 어느 날에 산으로 향했다. 저만치 보이는 산록은 엊그제까지도 울긋불긋 화려하던 단풍이 어느새 희멀거니 빛을 잃어 상록수만 청청하다. 산 아랫마을 수호신인 냥 입구에 서있는 벅수의 감시를 받으며 고샅을 지나 밭뙈기와 이어진 버덩에 이르니 골바람에 사락거리는 잡풀이 싱둥하기만 하다.

산으로 들어서자 늦가을의 정취에 정겨움이 가득하여 초입에서부터 취한다. 그 멋거리지고 미묘한 정취를 경화수월(鏡花水月) 서정으로 표현하지 못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한참을 오르다가 등줄기에 땀이 후줄근하여 근처 계곡의 실도랑으로 내려갔더니 가재가 눈에 띤다. 눈이 저절로 휘둥그레졌다. 참으로 얼마만인지 기억조차 없으나 어린 시절에 보고 여태껏 못 보았으니 그동안 강산이 변해도 여러 번 변했으리라. 어찌나 반가워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이내 돌 속으로 숨어 버린다. 돌을 들추고 보려다가 행여 놀라거나 다칠세라 그만두었다. 일급수에서만 산다는 가재는 민물새우와 더불어 환경오염에 가장 약한 어종으로 알려졌다. 서식지 파괴에다 환경오염은 물론 외래 민물어종에 자리를 빼앗겨 갈수록 토종물고기가 줄어든다는데 그리도 귀한 가재를 보았으니 어찌 아니 반가우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속담이 있다. 최근 동식물을 막론하고 외래종들이 들어와 토종들이 살던 자리를 빼앗고 있다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외래 민물고기뿐 아니라 황소개구리가 사는 못에는 토종 참개구리의 씨가 마를 지경이라 한다. 심지어 뱀이 개구리의 천적이라지만 웬만한 새끼 뱀 따위는 황소개구리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니 당연히 그곳에서 왕초노릇을 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요마적에 TV에서 보니 중부지방의 하천변을 중심으로 “가시박”이라는 외래 덩굴식물이 말썽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옥수수나 콩에 가장 큰 피해를 준다는 가시박은 줄기와 잎이 오이와 비슷하나 열매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덕지덕지 붙어있어서 사람이 접근하여 제거하기조차 어렵단다. 한 포기당 수백의 종자가 생기고 땅속에서 보관되다가 수년 후까지 계속 발아되는 특성인데다 생장도 왕성하여 1년에 여러 번 제거해도 끊임없이 올라온다는 것이다. 가시박은 미국에서 수입된 곡류에 섞여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될 뿐이란다. 시험결과 가시박 종자에는 다른 종자의 발아를 억제하는 성분이 있어 주위에는 다른 식물들이 잘 자라지 못한다니 경쟁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예전에 갈대가 무성했던 한강변 상당부분이 이제는 가시박 덩굴로 뒤덮였다니 어찌하면 좋으랴.

황소개구리와 민물어종인 베스나 블루길, 가시박 등 외래종에게 시달리는 우리의 토종 동식물들이 측은하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있을 것인데 왜 우리의 토종들은 객지에서 온 그들에게 맥을 추지 못하는 것인지 살그니 심통이 났다. 그런데 후반부에 우리의 토종식물이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의 식물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례를 소개하였다.

미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그 식물이 칡이라고 한다. 덩굴식물인 칡은 우리나라에서도 생장이 왕성하기로 유명한 식물로서 독이 없어 줄기와 뿌리를 약으로 쓰거나 식용하며 8월에 자주색 꽃이 핀다. 칡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연유는 생장이 왕성한 칡을 심어 헐벗은 산을 푸르게 할 목적으로 미국인들이 일부러 들여간 것이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칡이 주위의 큰 나무들을 감고 올라가 고사시키자 심각성을 깨닫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아마 미국에서 칡덩굴의 맹위는 우리의 가시박 수준을 훨씬 넘어선 듯하다. 오죽했으면 칡덩굴을 제거하는 중장비까지 개발되었으랴. 실제로 칡덩굴은 수십 미터까지 뻗어나갈 뿐만 아니라 땅에 닿은 줄기의 마디마다 뿌리를 내려 계속 번성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가시박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공격력을 지닌 셈이다. 미국에서의 칡은 우리나라에서의 가시박과 같은 말썽꾸러기가 분명하지만 어쩐지 외래종에 시달리는 우리 토종식물들을 대표하여 미국으로 건너가 복수라도 한 것처럼 밉지가 않다.

야생에는 여러 종의 식물들이 뒤섞여 자라면서 특정 식물이 우점하지 못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저마다 주위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능력이 있어서 나름대로의 대책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환경적응력의 예는 덩굴식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덩굴식물이나 꼿꼿이 서서 자라는 식물 모두 햇빛을 받아 살아간다. 땅위를 낮게 뻗어 나가는 덩굴식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두 가지 재주를 익혔다. 햇빛이 드는 곳으로 재빨리 뻗기 위해 빨리 자라는 재주가 첫 번째요, 아무리 빨리 자라더라도 그늘진 곳을 기어나간다면 소용없으므로 키 큰 나무를 감고 올라가 음지를 벗어나는 재주가 두 번째다. 이와 같은 식물의 환경적응력을 감안하면 외래종이 처음에는 일시적으로 토종식물들을 괴롭힐지 모르나 집고 영원토록 지배하지는 못하리라. 특유의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토종들이 바이없이 당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일단 파괴된 생태계가 복구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 알 수 없다. 외래종을 들여올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박힌 돌이 굴러온 돌에 자리를 빼앗길 처지인데 벋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으랴.

겨울 문턱에서 본 산천초목은 그저 신선하기만 하다. 산 중턱의 자드락에는 먹음직스럽게 농익은 야생홍시가 잎사귀 없이 뭉긋하게 서있는 감나무에서 대롱거리며 입맛을 다시게 한다. 흔들리지도 않는 큰 나무여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물매를 던져 간지게 붙어있는 한 개를 용케 떨어뜨렸다. 겨우 밤톨만한 토종 홍시지만 꼭지를 따고 한 입에 넣으니 그보다 더 맛있는 것은 이 세상에 다시 없을듯하다. 타달거리며 산을 나서는데 잘생긴 보득솔 한그루가 함초롬한 가지를 연해 흔드는 것이 작별인사라도 하는 모양이다. 아침에 동녘 산마루를 나섰던 해가 종일 여정에 노자근한지 서산마루에 앉아 우리가 지켜야 할 산천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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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러온 돌과 박힌 돌

박 철 한 가을 깊은 어느 날에 산으로 향했다. 저만치 보이는 산록은 엊그제까지도 울긋불긋 화려하던 단풍이 어느새 희멀거니 빛을 잃어 상록수만 청청하다. 산 아랫마을 수호신인 냥 입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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