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길이 오솔길이다. 오늘날처럼 차량이나 농기계가 흔치 않았던 시절에는 걸어 다니며 모든 일을 처리하였다. 논밭으로 일하러 가면서도 그저 지게에 쟁기를 짊어지고 소를 몰고 걸어가면 되었으니 자연 여기저기 오솔길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농사에도 차량이나 농기계 아니면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경지정리 된 펀더기뿐만 아니라 시골의 웬만한 골짜기까지도 넓은 길이 나 있으니 오솔길이 사라지는 것도 당연하다. 배낭을 짊어지고 산에 오르지 않는 한, 시골 마을의 숲정이에서 조차도 오솔길을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하기 위해 고향마을 뒷산에 자리한 산소엘 갔다. 매년 추석이면 가는 길이지만 그 때마다 애를 먹는다. 예전에 있었던 오솔길이 흔적조차 없어졌기 때문이다. 하기야 일 년에 한두 번 지나다닐 뿐이니 그럴 만도하다. 곡식이 자라던 자드락은 묵정밭이 되었고 요람기(搖籃期)부터 품앗이로 여럿이 일을 하는 날이면 놉들의 새참을 나르시는 어머니를 따라 오갔던 오솔길은 잡목과 가시덤불만 우거졌다. 수십 다랑이의 논배미가 있었던 재 너머 골짜기는 개력하여 옛 모습을 잃은 데다 서너 채의 집까지 들어섰다. 그곳까지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며 매일같이 오르내렸던 옛 고갯길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멀찌감치 반비알진 곳으로 자동찻길이 나 있다. 경사도 완만하고 넓은 길이라지만 거리는 훨씬 멀어 걸어서 갈 바에는 예전의 오솔길보다 낫을 것도 없었다. 오솔길은 주로 지름길이어서 목적지까지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너덜겅이나 된비알에까지 오솔길이 지나는 것은 아니며 걷기 쉬운 곳으로 생겨나게 마련이다.
어린 시절 오솔길에서 벌집을 따던 기억도 새롭다. 어느 날 같은 또래 아이들과 길옆의 벌집을 건드려 난장판을 내고는 독이 올라 윙윙거리는 벌을 피해 수풀에 엎드려 보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멋모르고 그곳을 지나던 아주머니가 벌에 쏘이고 말았다. 벌들이 엉뚱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한 셈인데 통증으로 허둥대는 모습을 보며 키득거리다가 결국 발각되어 호된 꾸중을 들어야 했다. 그 시절에는 어쩌다 벌집이 발견되면 돌을 던지거나 긴 막대로 건드려 따는 장난을 하기 일쑤였다. 그럴 때 어른들이 “뭐 하러 벌을 건드느냐”라고 핀잔을 하면 아이들은 “벌에 쏘이지 않도록 벌집을 없앤다.”라는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재미삼아 저지른다고 해야 옳다. 야생벌은 엄지손가락만 한 말벌을 비롯하여 호박벌, 땅벌, 나나니벌 등 그 종류도 많다.
일터를 오가며 이웃과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던 오솔길은 걷는 사랑방이었다. 거기에는 남정네들의 세상만사 시시껄렁한 애기부터 아낙네들의 자식자랑이나 시어머니 험담까지도 배어있다. 오솔길은 사람들이 늘 다녀야만 묵지 않는다. 인적이 끊겨 사라져가는 그 길, 비바람에 시나브로 사위어가는 유적을 대하는 심정이다.
오솔길은 풀잎에 옷깃을 스치며 흙을 밟고 오가는 길이다. ‘신토불이’라는 말이 있다. 글자그대로 풀이하자면 ‘몸과 흙은 둘이 아니다’라는 말로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토종농산물의 소비를 권장하기 위해 널리 애용되었던 말이다. ‘신토불이’는 중국 서진시대 진수가 편찬한 위, 오, 촉의 사서(史書) ‘삼국지’에 나오는 말이다. 위나라의 수많은 병사가 오랜 전쟁 중 원인모를 병으로 쓰러지자 왕이 당시 명의였던 ‘화타’에게 그 원인을 물었다. 화타는 ‘신토불이’라는 말을 하며 병사들이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다른 땅을 밟고 먹던 물도 다르니 향수병에 걸린 것이라 진단하였다. 위왕은 화타의 처방대로 병사들의 고향에서 물과 흙을 가져와 달여 먹였더니 말끔히 낫더라는 것이다. 이처럼 흙이 우리 몸과 하나라는 신토불이가 아니더라도 황토는 생체활성화 능력 때문에 생육광선이라 일컬어지는 원적외선 에너지를 가장 많이 방출한다. 그 에너지는 물체의 분자활동을 자극하여 생명체의 경우 생체기능이 되살아난다는데 황토를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란다. 민간요법으로 곪은 상처를 치료하고 체내 독소를 풀기위해 황토를 쓰기도 한다.
의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원인모를 질병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혹, 그 질병이 명의 화타의 진단처럼 고향을 떠나 수십 년을 콘크리트 바닥만 밟고 다니는 사람들의 향수병은 아닌지 모르겠다.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넓고 탄탄한 길보다는 가끔씩 흙을 밟으며 오솔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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