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을 마친 남자들이 한 번씩은 경험하는 게 있다. 바로 군대 가는 꿈! 군 복무를 마쳤는데 다시 군대에 가거나 군대에서 생활하는 꿈을 꾸는 것이다. 내가 입대한 게 벌써 20년 전이니, 강산이 두 번이 바뀐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어젯밤 군대에 다시 가는 꿈을 꾸었다. 비록 꿈이었지만 생생했다. 당시의 막사, 행정실, 연병장 등 꿈에서 본 모든 것이 내가 군생활하던 20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심지어 내 상관과 동기까지 당시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군대 가는 꿈은 깨고 나면 뭔지 모를 ‘식겁함’이 있다. 보통 남자들은 군대 가는 꿈을 꾸고 나면 욕을 하거나 안도한다. 웃기는 이야기이지만 나도 어젯밤 군대 꿈을 꾸고 잠에서 깨어 가슴을 쓰러 내린 채 안도했다. 한편 나는 마음 한구석에 군 생활했던 부대를 다시 방문하고 싶을 때가 있다. 부대 안 연병장과 막사와 식당과 내무실과 PX 등 2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냈던 그곳이 생각나 한 번쯤 둘러보고 싶은 것이다.
이처럼 한국 남자들이 욕을 하면서도 그리워하는 군대는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비록 나는 ROTC 장교로 군 복무를 마쳤지만 후보생 시절과 군복무 시절 폭력과 부당함을 일상 속에서 수시로 접했다. 속칭 ‘계급이 깡패’라는 말을 내면화하며 상급자나 선배가 말도 안 되는 지시를 해도 따라야 했다. 영내 대기를 오랫동안 하며 구속된 생활의 답답함을 견뎌야 했다. 먹는 것 입는 것 모든 게 형편없었다. 심지어 병사들은 화장실 가는 것도 보고하고 다녀와야 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브르드외(Pierre Bourdieu)는 군대, 학교, 정신병원이 감옥과 같은 속성을 지녔다고 하였다. 이러한 조직은 감시와 처벌 속에 권력이 원하는 가치를 구성원에게 주입하고 내면화하여 갱생하는 역할을 한다. 과거 우리나라는 학교에서 집단주의 문화를 1차로 학습시켰다. 8살에 입학해 19살까지 학교에 다니며 12년 간 배우고 내면화한 잠재적교육과정으로서 집단주의 문화는 우리 사회의 권위주의를 유지하는 근간이었다. 이후 2차로 스무 살이 넘은 남자들은 군대에 가서 더 강력한 집단주의와 권위주의 속에 2-3년을 생활하며 조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불합리성을 강화하게 된다.
건강한 자아를 지닌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간섭받거나 지배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지배당하고 억압된 상황을 오랫동안 경험하면 그 안에 내재된 가치를 삶에 내면화하게 된다. 또한 함께 어려움을 겪는 동료와는 심리적 유대감과 동질감을 느끼며 단합된 모습을 보이게 된다. 과거 학교와 군대가 비슷한 모습을 지녔었다. 그래서 남자들이 군대에 치를 떨 듯, 사람들이 교사와 학교에 적개심을 지닌 경우도 많았다. 반면 군대 동기와 학교 동창이 그리운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 학교는 집단주의와 권위주의에서 탈피해 개인의 삶과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는 문화로 변화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학교 교육과정이 정치와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학교 문화는 점점 민주화되고 인권과 평등의 가치가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긍정적 변화는 더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학교가 변하고 있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이제 군대도 변화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징병제로 모든 남자들이 군대를 가고 그곳에서 내면화한 가치로 사회생활을 하는 남성중심 사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국민 교육기관인 학교와 군대가 변화해야 한다. 이제 교사와 학교에 대한 적개심이 사라지고, 군대 가는 꿈을 꾼 후 가슴 쓰러내리는 일이 없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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