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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 엽[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

미래뉴스입니다 2021. 12. 9. 09:11

박 철 한

몇 개 남은 이파리가 소슬바람에 쓸쓸히 흔뎅인다. 앙상한 가지 끝에 간신히 매달려 먼저 간 벗들을 따르려고 소슬바람을 청했는가 보다. 그것이 아니면 그 많던 동무들이 떠났음에도 더 버티고픈 미련으로 발버둥을 치는지도 모르겠다. 푸른 옷을 벗고 노란 옷으로 곱게 단장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낙엽이 될 처지이니 저물어가는 가을을 붙잡고 애원이라도 하고플 터이다. 늦가을 산행에서 본 은행잎의 애잔한 모습이다.

거리의 벚나무와 이팝나무에서부터 외국에서 들어와 이 땅에 자리를 잡은 플라타너스, 포플러, 아카시아에 이르기까지 이파리 옷을 거의 벗어간다. 산 아래의 마을 어귀에서도 족히 수 백 년은 되었음직한 느티나무가 가지만이 앙상한 채 외로운 모습으로 반긴다. 마을사람들에게 여름날의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던 나날들이 여태껏 얼마일지며 그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위에 지친 몸을 추스르고 갔으랴. 저 노목이 젊은 날에는 연지와 곤지를 찍고 시집가는 새색시의 가마행렬을 보았을 것이며 여름날이면 뭇 선비들이 그늘에 앉아 갓을 쓰고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읊조리는 시조도 들었을지 모른다. 느티나무는 아마 이파리가 무성한 날의 추억만을 간직하고 싶을지니 낙엽이 지고 찾아와 쉬어가는 이도 없는 날들의 기억은 다 지웠으리라.

저만치 산비탈에는 돌감나무가 겨우 밤톨만한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서있다. 감은 욕심껏 붙잡고 있으면서도 그 많던 열매를 통통하게 살찌우려고 봄부터 무던히도 애를 쓴 이파리들을 모조리 떨어뜨렸으니 어찌 매정하다 하지 않으랴. 지난 밤 된서리에 달콤한 맛이 더해졌을 홍시감이 먹음직스러운데 손이 미치지 못할 만치 높아 보인다. 감나무에서 눈을 떼려는데 까치도 같은 생각을 하였는지 쪽쪽이며 내려앉더니 홍시를 정신없이 쪼아댄다.

누렇게 말라버린 고추밭을 지나니 묵은 밭을 시작으로 산 입구까지 하얗게 핀 억새이삭이 장관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억새의 하얀 솜털이 마치 한겨울의 눈송이를 보는 듯 하다. 억새이삭이 솜털을 다 날려 보내면 앙상한 살만이 남을 것인데 그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억새이삭이 여문 종자를 솜털 낙하산에 태워 날려 보내는 것은 종자를 멀리 퍼뜨리기 위해서다. 한 이삭에 달린 억새종자는 수백 개에 이를 터인데 만약 솜털이 아니라면 그 자리에 떨어져 감당하기 어렵게 되리라. 그러나 종자에 솜털이 붙어있어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으니 넓게 퍼질 수가 있다. 자연의 이치가 참으로 오묘하다.

무성한 억새사이를 지나 밤나무 아래 이르니 다람쥐 한 마리가 파들거리며 눈망울을 굴리다가 날쌔게 나무를 탄다. 알밤을 찾으려고 너저분한 밤송이를 헤쳐 뒤져보았지만 먹을 만한 것은 볼 수가 없다. 아마도 다람쥐가 겨울에 먹으려고 죄다 물고 간 모양이다. 머리 위 밤나무에는 여태껏 떨어지지 않은 황갈색 이파리들이 사락거리고 가시 돋친 빈 밤송이도 군데군데 눈에 띤다.

단풍나무도 아직은 아쉬운 듯 유난히도 붉은 잎을 띄엄띄엄이나마 붙들고 있는데 앙상한 가지 끝에 의지하고 산들바람에 나팔거리는 이파리가 긍련하다. 저 잎마저도 지고 나면 내년 봄 새싹이 틀 때까지 추운 겨울을 잎 없이 지내야 하니 그 신세를 한탄할만하다. 같은 처지의 자귀나무와 소나무 사이에 나란히 자리하였으니 그나마 덜 외로워 보이지만 추운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는 소나무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듯 하다.

높지 않은 산꼭대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어느새 단풍잎이 지고 가절한 맛이 사라진 산과 추수가 끝나 휑뎅그렁한 들판까지 늦가을의 처처함이 감돈다. 산을 내려오는데 웬 가시나무가 휘청거리며 몸을 당긴다. 뒤를 돌아보니 빨간 열매로 곱게 단장한 명감나무가 휘우듬하게 서서 가시로 옷자락을 붙잡고 있다. 아마도 맵시를 뽐내며 기다리는데 아무도 봐주지 않으니 그렇게라도 붙잡고 청해본 듯 하나 역시 마지막 남은 이파리 한 개를 간신히 달래고 있는 외로운 모습이다.

가을에 단풍이 드는 것은 나뭇잎이 찬 기운을 받아 엽록소의 생산을 멈추고 붉거나 노란 색소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에는 울긋불긋 화려해 보일지라도 정작 이파리들은 찬 기운을 받고 기력을 잃어가는 시기이다. 나무에서 이파리들은 봄에 싹을 틔워 낙엽이 될 때까지 고귀한 희생정신을 발휘한다. 단풍들기 전의 푸른 옷은 나뭇잎의 작업복이라 할 수 있다. 이파리들은 봄부터 여름 내내 부지런히 양분을 만들어 뿌리와 가지를 키우고 열매를 살찌운다. 그러다가 찬 기운이 돌고 기력이 쇠해지면 잠시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쉬다가 낙엽이 되어 생을 마감한다.

인생을 말할 때면 젊음을 청춘이라 하거나 늘그막을 황혼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청춘은 식물의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을 젊음에 비유한 말이다. 황혼(黃昏)에서의 황은 가을날의 곡식이 누렇게 익으면 떨기가 생을 마감하고 나뭇잎이 푸르다가도 노란단풍이 들면 어김없이 낙엽이 되는 의미이리라. 낙엽을 보노라면 평생 자녀들을 뒷바라지 하다가 늘그막에야 쉬면서 삶을 정리하는 인간과도 닮았다. 늦가을의 단풍든 낙엽에서 인생의 황혼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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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철 한 몇 개 남은 이파리가 소슬바람에 쓸쓸히 흔뎅인다. 앙상한 가지 끝에 간신히 매달려 먼저 간 벗들을 따르려고 소슬바람을 청했는가 보다. 그것이 아니면 그 많던 동무들이 떠났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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