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호
나무껍질
무언가 채찍에 당한 흔적 같기도 하고
스스로 팔을 그은 自害의 자국 같기도 한
그 시퍼런 등줄기를 따라가면
가려운 곳 제대로 한 번 긁어내지 못하고,
한 움큼의 서러움을 머리에 인 채
종일 바람에 기대어 먼 산 구름에
삼천 배를 올리는 울음들이 엎드려 있다.
잠이 떨 깬 부스스한 얼굴로
깜깜한 새벽을 깨고 나와야 하는
어린 꽃잎들을 위하여
애처로이 길이 끊기는 안개 속에서도
등짐 가득, 산을 짊어지고 날아야 하는
작은 새들을 위하여
여기가 아니고 지금이 아닌
또 다른 그 어떤 곳을 향하여 제 몸을 찢던
저 남루한 소망의 옷가지들을 만져본다.
벌레처럼 꿈틀꿈틀,
가느다란 가지의 끝을 보듬고 기어오르는
‘껍질’이라는 말이
왜 이리 아프고 슬픈 것인지
왜 이리 가슴 먹먹해지는 것인지……
빼빼하게 마른 나무의 등가죽을 적시며
끊임없이 살을 에었을
비의 문신文身들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한 벌의 몸,
두 손 하늘을 받들며
저리 괴기怪奇한 눈물로
한 생生을 채워야 하는 사랑이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천둥 번개를 맞아야 하는 것일까
군데군데 속살들이 터져 나온 자리마다
옹긋하게 돋아난 거친 상처들이
고단한 등피처럼
어둠을 뒤집어 쓴 눈시울처럼 유난히도 붉다.
-------------------- 【시작메모】 ----------------------------------
숲길을 걷는다. 길가의 크고 작은 나무들을 바라보면 저마다 하늘을 향해 뻗어간 가지들과 둥치의 모양 또한 각양각색이다. 구부러지고 휘어지고 솟아오른 그 껍질의 모습들이란 은밀한 삶의 흔적을 보여주는 듯 처절하다. 저 ‘나무껍질’들은 도대체 어떠한 세월들을 간직하고 있는 것인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풍경 속의 ‘나무껍질’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면 볼수록 신기하다. 아니 가슴 저미게 하는 무엇이 있다.
‘딱딱하지 않은 물체의 겉을 싸고 있는 물질의 막’이라고 풀이되는 ‘껍질’이라는 말이 불현듯 슬프고 가슴 먹먹해지는 말로 다가오는 것이다.
순간, 머릿속에서 나무껍질과 어머니가 오버랩 된다. 자식들을 위해 한 生을 바치는 어머니의 사랑이란 더 이상의 구차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나무껍질’은 어쩌면 어린잎을 보호하려는 그런 희생의 모습을 지녔다. 햇볕과 비바람과 눈보라와 천둥, 번개를 막아내며 온갖 고통을 이겨내는 거룩한 몸부림이 아닐 수 없다. 세로로 가로로 찢기고 구겨지고 일그러지고 더러는 구멍이 숭숭 뚫린 흉한 모습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오랜 세월 아무런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 ‘나무껍질’……, 그 거룩하고 聖스런 사랑에 대해 나도 몰래 고개가 숙어지는 것이다.
푸른 잎사귀와, 시원한 그늘과 청량한 새소리와 풍성한 열매와 곱디고운 단풍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그렇게 누군가의 사랑이, 보이지 않은 희생이 있었음을 하찮은(?) ‘나무껍질’을 통해 감히 깨닫는다. 문득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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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iraenews.co.kr/news_gisa/gisa_view.htm?gisa_category=02060000&gisa_idx=17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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