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라니의 눈망울[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

미래뉴스입니다 2024. 10. 14. 16:13
박 철 한

마른장마가 이어지는 여름날에 농삿길을 걸으니 새파란 들녘에 생기가 넘친다. 엊그제 모내기를 한 것 같은데 어느새 새끼를 친 벼 포기가 토실토실한 것이 배동바지가 머지않은 듯하다. 예전 같으면 농부들이 만도리를 하느라 부산할 텐데 요샌 주로 우렁이를 넣어 잡초를 제거하니 그럴 필요가 없다. 저만치 논배미에는 두루미 예닐곱 마리가 한가로이 먹이 사냥을 하고 있다. 아마도 제초작업에 투입된 우렁이가 임무를 마치기도 전에 두루미에게 잡아먹히고 있으리라.
농삿길을 따라 이어지는 폭이 3미터도 안돼 보이는 도랑에는 양쪽 둑이 다듬어진 돌과 콘크리트 수직 벽으로 말끔하게 단장되었다. 그런데 한참을 걷다 보니 고라니 한 마리가 그 도랑에 갇혀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수직의 양쪽 둑은 저 먼 곳까지 높이가 한 길 이상이었고 폭이 좁은데다 곳곳에 꽤 높은 보가 설치되어 있어 위아래 어느 쪽으로도 오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산에서 내려와 도랑을 건너려다가 그곳에 갇힌 모양이지만 도랑이 인간에 의해 개발되지 않았다면 무난히 건널 수 있었을 것이니 고라니의 실수도 아니리라. 혹시 고라니가 무사히 빠져나갈 만한 곳이 있으면 그곳으로 유도하려고 여기저기를 훑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고라니가 빠져나갈 곳이 보이지 않았다. 만약 사람이 빠졌더라도 사다리가 없다면 결코 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다만 위쪽의 보는 오를 수 없을 지라도 잘하면 아래쪽 보는 뛰어 내릴 수 있을 듯하였다. 할 수 없이 아래쪽의 보를 뛰어 내리게 하고 큰 냇가에 이르기까지 수백 미터를 유도하여 간신히 산으로 몰았다. 인간의 삶과 편익을 위한 하천 개발도 좋지만 동식물들과 공존하는 자세와 지혜가 필요하지 않으랴.
하천의 둑이나 바닥을 콘크리트로 네모반듯하게 단장하면 우선 눈으로 보기에 개운할 수는 있겠으나 환경을 위해서는 필요악이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그곳에 서식하는 동식물들의 생존 여건 악화는 물론이고 인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수풀은 흐르는 물을 정화하기에 냇가의 수풀 사이를 흐르는 물이 콘크리트 바닥에 흐르는 물보다 훨씬 더 깨끗하다고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자연 상태의 냇가에서는 물이 구불구불 바닥을 핥으며 달래듯이 흐르므로 홍수피해가 적으나 개발된 하천에서는 물살이 빠르고 거침없이 흐르므로 양쪽 둑이 무너지는 등 그 피해가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2019년 2월에 뉴질랜드 오클랜드 북부지역에서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는 과실파리 2종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여행자들의 짐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알려진 그 과실파리가 만일 오클랜드에 자리를 잡는다면 연간 50억 달러 이상의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을 것으로 예상했다. 따라서 뉴질랜드 정부는 2종의 과실파리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7월까지 겨우 14마리를 잡는데 총 140억 원 가까이를 썼다니 식물을 보호하려고 해충 한 마리당 10억 원을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요마적에 우리를 놀라게 하는 뉴질랜드 뉴스가 또 있었다. 그 내용은 “뉴질랜드의 한 탄광회사가 채굴지역에 서식하는 달팽이들을 다른 지역으로 안전하게 옮기는 것을 조건으로 총 4억 달러 상당의 석탄 채굴이 예상되는 탄광개발 허가를 받았다. 회사 측에서 ‘달팽이 250여 마리를 그 지역과 환경이 비슷한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데 약 12억 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며 이미 달팽이들의 이사를 담당할 15명의 인력을 확보해놓았다. 그리고 달팽이들을 위해 그 지역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탄광개발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게 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고 있다. 250여 마리의 달팽이들은 사람들이 숲을 헤집고 다니며 손으로 주워, 2리터용 플라스틱 용기에 한 마리씩 넣어 옮기게 될 것이며 통 속에는 달팽이 서식지에서 자라는 촉촉한 이끼들을 바닥에 깔아놓게 될 것이다.’라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단체에서는 그 정도의 달팽이 보호조치로는 미흡하다면서 회사에서 밝힌 새로운 서식지는 85마리 정도밖에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 지적에 대해 회사 측은 ‘새로운 서식지의 크기는 얼마나 많은 달팽이들이 발견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1ha당 130마리까지 살 수 있으니 만일 250 마리를 찾아낸다면 최소 2ha만 있어도 될 것이다. 만약 그 보다 더 많이 찾아내더라도 스톡턴 지역에 달팽이 서식에 적합한 곳이 최소한 10ha나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라고 반박했다.”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뉴질랜드 사람들이 자연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전국의 야산 곳곳이 골프장과 택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파헤쳐지고 특히 수로를 정비한다며 개울과 도랑의 양쪽 둑에서 무성한 수풀이 사라지고 대신 다듬어진 돌과 콘크리트로 된 수직 벽이 부지기수로 설치되었다. 심지어 도랑 바닥까지도 콘크리트로 덮인 곳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토록 수많은 개발을 하면서도 뉴질랜드처럼 거기에 살고 있는 동물들이 옮겨가서 살 수 있도록 다른 곳에 거처를 마련해 주었느냐 하는 점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여태껏 거기에서 살았을 개구리, 물고기, 수달, 곤충 등 동물들은 어디로 가야하랴.
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해충 한 마리 잡는데 10억 원을 쓰고 달팽이 250마리를 이전하는데 12억 원을 쓰는 뉴질랜드처럼 우리도 동식물들을 고려한 개발이 아쉽다. 또한 인간이 만들어 놓은 도랑에 갇혀 발버둥을 치며 힐끗힐끗하던 고라니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그 눈망울에 꽉차있어야 할 두려움은 온대간대 없고 오직 인간에 대한 원망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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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의 눈망울

박 철 한 마른장마가 이어지는 여름날에 농삿길을 걸으니 새파란 들녘에 생기가 넘친다. 엊그제 모내기를 한 것 같은데 어느새 새끼를 친 벼 포기가 토실토실한 것이 배동바지가 머지않은 듯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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