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이 오르내린다는 소식은 뉴스를 통해 들었을 뿐 금값으로 세계 경제 현황이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도 크게 상관없이 살아왔다. 나에게는 꼭 사야 할 물건이 아니니, 저건 금일 뿐이다.
3월에 조카 돌이라며 반지를 사려 함께 가자는 친구를 따라 금은방에 갔다. 도매가로 판매 하는 곳이라는 매장 안은 크고 번잡했다. 판매하는 사람은 금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팔목, 손가락, 목에 묵직하게 금장식을 하고 있었다. 하나도 아니고 서너 개씩 걸쳐 있는 금제품이 얼마나 무거워 불편할까 하는 시선으로 나는 한참을 쳐다보았다. 측은지심마저 들었다. 구경하는 일도 지루해 홀로 차 한 잔을 마시다 보니 지난 일이 떠올랐다.
내 첫아이를 기르던 무렵만 해도 금값이 지금처럼 비싸지 않았다. 형제들은 시골에서 농사일도 하고 시어머니와 함께 산다며 아이들 돌이면 금반지를 선물했다. 시댁 형제가 많아 아이 돌 때는 금반지를 뜻하지 않게 몇 개씩은 받았다. 나는 앙증스럽고 귀여운 금반지를 보며 어떻게 하면 보다 의미 있게 활용할까 궁리했다.
그 당시 시어머니와 둘째 형님이 내 아이들을 금쪽같이 보살펴 주었다. 나도 뭔가 보답을 하고 싶었다. 금으로 보관하는 것보다 시어머니와 형님께 반지를 선물하자 마음먹었다. 남편과 의논해 금은방에 돌 반지를 맡겼다. 그 반지를 두 사람에게 선물할 상상만으로도 설렜다. 새로운 가족으로 맺어진 둘째 형님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살림에 서툰 나는 매일 어머니 식사준비를 하는데 걱정이 태산이었다. 형님은 그런 나의 고민을 헤아려 양손에 반찬을 들고 왔다. 그 고마움에 뭔가 보답하고 싶었던 찰라, 아이들 금반지가 반갑기만 했다. 또 한 번의 세공과정을 거쳐 두 사람에게 선물했다. 시어머니도 크게 기뻐했다. 시어머니는 한사코 일할 때 끼면 반지가 닳는다고 나에게 보관을 부탁했다. 시어머니는 정신이 없어 둔 자리도 잃어버린다며 정신이 더 맑은 내가 보관하길 원했다. 그런 간곡한 부탁으로 시어머니의 반지를 보관하게 되었다.
둘째 형님은 반지를 선물한 지 얼마쯤 지나 도둑이 안방 장롱을 뒤져 반지를 가져버렸다. 형님 역시 아꼈다가 외출할 때나 끼려고 장롱 속에 보관했던 것인데. 형님은 안타까움이 병이 되어 자리를 보존하고 누웠다. 그런 모습에 나는 차라리 선물하지 말았더라면, 하는 마음조차 들었다.
시어머니는 그 무렵 고혈압으로 몸에 이상 반응을 일으키더니 자꾸 금반지를 달라고 했다. 당신이 두고도 매일 날 도둑 취급하니, 그 불편한 마음은 지옥 같았다. 어머니는 찬장 그릇 속에 반지를 분명 두었는데 없다고 머리를 싸매고 누워 식사도 거절하기가 일수였다. 시어머니는 나를 두고 도둑하고 한 집에 살아가야 하는 것이냐며, 마을 사람들과 형제들에게 하소연했다. 나는 눈을 뜨고 아침을 맞이하는 날들이 두려웠다. 차라리 새 반지를 맞춰드리자고 남편에게 거듭 부탁했다. 남편은 어머니가 노환으로 그러는 것이니 못 들은 척하라는 거다. 들리는데 못 들은 척하라니 남편의 말에 상처가 더 컸다. 결국, 어머니는 그 일을 두고두고 당신은 반지 때문에 병을 얻었다며 나를 원망했다. 내 모습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억울하기만 했다. 시어머니는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며 양심을 바로 쓰라는 말로 나를 옥죄였다. 그 일로 끝내 어머니는 유명을 달리했다. 나는 집안 어딘가에 그 반지가 있을 것만 같아 낡은 가구들을 내다 버릴 때마다 뒤따라 가 보았다. 낡은 가구가 나간 자리마다 혹시나 하고 쓸고 닦으며, 집안 어딘가에 반지가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그 반지의 행방은 찾을 길이 없었다. 반지를 잃어버린 집은 그대로 두고 새집을 지어 이사했다.
빈집으로 거의 이십 팔 년 정도 있었다. 나는 빈집으로 보이지 않았다. 저 집 어딘가는 금으로 반짝거릴 반지가 있는 곳이라 여겼다. 언제든 그 반지를 찾아내 도둑의 누명을 벗을까 하는 마음이 수시로 나를 흔들었다. 빈집을 볼 때마다 언제쯤 저 낡은 가구들을 들어내고 속 시원하게 반지를 찾게 될까 하는 마음이 고질병처럼 들었다. 그러나 그 낡은 가구가 치워지는 날은 쉬이 오지 않았다. 언젠가 형님들에게 조금이나마 내 마음을 이해할까 싶어 “형님 그 반지가 저기 빈집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요.?” 하고 물었다. 형님은 “자네는 아직도 잊어버렸는가?” 하더니 웃음으로 대신했다. 나는 말을 하면서도 삼십 년도 훨씬 지난 일이 어제처럼 선연해지는 것이 청승맞기도 했다.
그날은 시부모 제사였다. 여섯 며느리 중 그 형님은 제사를 모신 후, 음복주를 나누는 자리에서 가볍게 실바람이 스치듯 말을 흘렸다. 다만 내 가슴에는 북소리처럼 점점 크게 들렸을 뿐이었다. 술기운으로 얼굴이 불콰한 형님은 “그때 어머니가 잃어버렸다는 반지 나한테 줬어. 그걸 팔아 홀로 사는 시동생에게 주라고 했네.” 그 말을 끝으로 형님은 “내가 입이 이렇게 무겁네.” 했다. 나는 고함이라도 치고 싶었다. 어떻게 그것이 입이 무거운 것으로 가름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나는 그 반지로 인해 얼마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는데, 형님이 예전에 다정했던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독을 지닌 해충처럼 보였다. 차라리 형님이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누명만 벗고 싶은 간절함으로 남았을 걸. 그 말을 듣는 순간 형님의 눈이 고양이눈빛처럼 보였다.
나는 우울했던 그 순간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고개를 흔들었다. 햇볕이 환하게 내리비치는 금은방 탁자에 빈 찻잔과 마주 앉아있는 이그러진 표정의 내가 생소했다. 이젠 과거 아픈 기억은 지워버리고 싶었다. 내 곁으로 다가온 친구는 고심 끝에 골랐다며 귀엽고 앙증스럽기까지 한 반지를 보여주었다. 찬란한 금빛이었다. 사랑스러운 아가의 꽃잎 같은 다섯 손가락과 금빛 조화를 상상했다. 내 표정은 한결 온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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