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문화 사회[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

미래뉴스입니다 2022. 12. 14. 14:33

박 철 한

소설(小說)이 지난 어느 날, 섬진강변의 곡성기차마을에서 열린 유네스코 광주․전남협회 주관행사에 참석하였다. 섬진강물에 초겨울의 가녀린 햇살이 내려 반짝이는 윤슬이 아름다운 오후였다. 그 행사에서 인도 소개와 함께 이어진 ‘다문화시대의 자세’에 관한 강의를 퍽 감명 깊게 들었다. 아침부터 지짐거리던 날씨가 새끼낮쯤부터 매지구름이 걷히더니 그 유익한 깨달음을 얻으려는 길조였던 모양이다.

강사는 20여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한 지방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인 인도인으로 우리말이 유창하였다. 인도는 한반도의 33배에 달하는 면적에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인구, 수 십 가지의 언어와 인종이 난무하지만 미국 실리콘벨리의 직원들 중에서 인도사람이 70%를 차지할 정도로 정보산업 강국이란다.

그 강사가 한국에 유학을 와서 가장 큰 불편을 느낀 것은 인도와 한국의 음식문화 차이 때문이었단다. 인도사람들은 음식을 맨손으로 집어 먹는데 이를 두고 한국 사람들이 비위생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결코 잘 못된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인도에는 식당 어디에나 손을 씻을 곳이 있어서 식사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으며 인도음식의 상당수는 손으로 집어 먹어야 제맛이 난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의 식당에는 왜 손 씻을 곳이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또한 인도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고쳐야 할 대표적인 식습관으로 큰 그릇에 담긴 음식을 여러 사람이 숟가락으로 떠먹는 점을 든다고 한다. “한국과 인도의 식습관을 비교 했을 때 어느 쪽이 더 위생적입니까?”라는 강사의 질문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우리의 된장에 관한 이야기도 심금을 울렸다. 한국에 와서 처음 된장을 보고는 결코 좋은 느낌이 아니었고 특히 냄새가 비위에 거슬리더란다. 더구나 가시가 꿈틀거리는 된장독을 보고는 기겁했으며 저런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 의아스러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잘 못된 생각이었음을 깨달은 것은 발효식품인 된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고부터였고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음식 중에서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이 되었다고 한다. 하기야, 그 과정을 모르는 외국인이 가시가 꿈틀거리는 된장독을 보았다면 된장을 불결한 음식으로 여길 수 있지 않으랴. 강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남에게 한국문화를 이해하기 바라면서 정작 한국 사람들은 남의 문화를 이해하려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강사가 한국 어느 도시의 다민족 행사에 참석하여 힌두교인들이 쇠고기가 들어간 뷔페음식을 먹지 않고 과일만 먹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웠다고 한다. 다민족이 참여하는 행사라면 쇠고기 음식을 제공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개고기를 먹는다고 비아냥대는 일부 서양 사람들의 인식 또한 옳지 않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는데 당연하다. 우리가 먹는 개고기는 당초 식용을 목적으로 길렀을 뿐 애완용개는 절대 먹지 않는다. 그것을 비난하는 것은 오로지 그들의 좁은 소견에서 비롯된 것뿐이니 그 풍습을 억지로 숨길 필요는 없으리라. 만약 소를 신성시하는 힌두교인들이 쇠고기를 먹는 그들을 비난한다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한국의 시어머니와 같이 사는 필리핀 며느리 이야기도 의미가 있었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아들을 낳은 필리핀 며느리에게 쇠고기미역국을 끓여 주었다. 그런데 며느리가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같이 시집온 친구에게 불평하기를 “내가 어렵게 아들을 낳았는데 우리 시어머니가 겨우 쇠고기미역국을 끓여 주다니 서럽다. 너는 예전에 아기를 낳았을 때 돼지고기미역국을 먹었다니 정말 부럽다”라고 하더란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에피소드라 할 수 있지만 한국과는 다르게 필리핀에서는 쇠고기보다 돼지고기가 훨씬 귀하고 비싸기 때문에 당연한 말이 아니랴.

지구촌 곳곳에는 아직도 일부다처제 부족이 많은데 그것은 예전부터 부족 사이의 오랜 전쟁으로 남자들이 희생되어 상대적으로 여가가 많았기 때문에 정착된 풍속이란다. 만약 그들이 일부일처제를 지켰더라면 짝을 찾지 못한 여자들이 어떻게 자식을 낳고 살 수 있었으랴. 일부다처제는 그와 같은 환경에서 자손을 남기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인데 그들을 어찌 미개인으로 치부하며 폄하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모두가 남의 문화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한 탓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도 단일민족의 전통은 이미 무너지고 어느덧 다문화사회에서 살고 있다. 남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무조건 선진국의 문화를 좇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를 긍지로 여기고 지키며 남에게 떳떳하게 자랑하는 자세가 아니랴. 귀한 깨달음을 얻고 해거름이 지나서야 행사장을 나섰다. 고양이 한 마리도 솔깃했던지 건물 앞에서 귀를 쫑긋하고 서 있다가 사부랑삽작 논둑을 넘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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