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초파일에 어느 절 인근으로 나들이를 갔다. 절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다 잔디에 앉았는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한 무리의 아낙네들이 저만치의 길을 따라 절로 향한다.
등허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짧은 저고리의 완두꼬투리처럼 둥그스름한 소매 끝에는 빛깔을 달리한 끝동이 맞대어졌다. 나비모양으로 맨 옷고름 끝은 허리춤 아래까지 내려와 나푼거린다. 가슴팍에서 주름 잡혀 부챗살처럼 퍼지며 흘러내린 기다란 치마는 허리춤을 덮고 걸음을 재촉하느라 방정맞아 보일 수도 있는 다리를 펑퍼짐하게 가렸다. 설령 촐랑거리는 다리일지라도 결코 남의 눈에 드러나지 않도록 슬금하게 보듬었나니 어찌 너그러운 멋을 지녔다 하지 않으랴. 하나같이 은은한 때깔의 저고리는 아려하고, 꽃무늬가 연하게 아롱다롱한 치마는 푼더분하면서도 불면 날아오를 듯이 회매하다. 옷이 날개라더니 마치 익어가는 봄날에 어디선가 찾아든 한 무리의 나비를 보는 듯하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일행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나서려던 발걸음을 절로 되돌렸다. 오로지 고상하면서도 결코 중뿔나지 않은 그 치마저고리 차림을 다시 보기 위해서였다.
경내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한복의 화사함이 가득하다. 법당 앞에는 한복차림의 나이 지긋한 아낙네가 두 손을 합장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동그라니 단아하게 목을 감싼 저고리 동정에다, 치켜 올려진 두 소매는 일매지고 아랫단이 바닥에 뿌리를 내린 듯한 치마는 함초롬하다. 잠시 후 예배를 마치고 법당을 나서는데, 발가락 오형제를 암팡지게 감싸 안은 백옥살결 버선낭자의 오뚝한 코가 댓돌 위에서 불그레한 꽃신에 감추어진다. 새삼스럽게 우리 치마저고리의 멋에 한껏 취한 날이었다.
여성 한복에서 저고리가 짧아지면 치마는 길어지게 마련이어서 저고리와 치마의 길이는 서로 대조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 조상들의 윗도리가 저고리라 불리게 된 시기는 대략 고려 후기인 14세기 초엽부터다. 여성 한복의 저고리는 변천을 거듭했다. 당초 우리 고유의 저고리는 길이가 길었으나 몽골 복식의 영향을 받으면서부터 점차 길이가 짧아지고 조선 중기에는 가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짧아졌다. 그러다가 국권피탈 이후 다시 길어졌으나 해방 이후 또다시 짧아지기 시작해 오늘날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저고리 앞에는 양편 옷깃을 여미어 매도록 고름을 달고 목 부위에는 깃을 둘러 대어 그 위에 조붓하니 동정으로 덧씌운다. 저고리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반달 모양으로 둥그스름하니 팔을 꿰는 부분을 만들고 끝동으로 마무리를 지은 소매다. 저고리 속에는 속적삼을 입었는데 속적삼은 동정과 고름이 없고 손으로 맺은 단추를 달았다. 적삼은 여름용 상의로 입기도 했으며 깨끼적삼이란, 안팎이 훤히 비치는 얇은 천을 겹으로 하되 두 폭을 맞대고 꿰맨 부분을 이르는 솔기를 곱솔로 박아 지은 옷을 말한다.
여성 한복의 멋을 주도하는 치마의 변천은 저고리보다 더하다. 치마의 어원은 몸에 차고 마는 옷이란 뜻의 ‘차마’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치마는 예로부터 앞치마처럼 펼친 모양을 하고 있어 몸을 말아 입었을 뿐 오늘날과 같이 끼워 입는 통치마가 아니었다. 몸을 말아 입는 옷이었으니 예로부터 치마는 바지나 저고리처럼 ‘입는다.’라고 하지 않고 ‘두른다.’라고 했다. 언제부터 통치마가 나왔는지 확실치 않으나 아마도 좀더 편리하게 입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으리라.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가 두르시던 앞치마 형식의 치마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아랫도리 속옷도 변했다. 오늘날에는 치마 속에 속치마를 입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예전에 치마와 고쟁이 사이에 입었던 통이 넓은 바지모양의 속옷을 단속곳이라 했다. 단속곳은 멋과 기능, 실용성 등을 두루 갖춘 속바지였는데 이는 앞치마처럼 펼친 모양의 치마를 몸에 둘러 입던 시절에는 단속곳을 치마사이로 엿볼 수 있어서였다. 국권피탈 이후 단속곳은 속치마로 대치되었다.
언제부터인지 한복은 평상시에 그 차림을 보기 어렵고 명절에나 특별하게 입는 옷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 주된 이유가 오늘날의 서양식 평상복들에 비해 낮은 한복의 실용성 때문일 뿐 멋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행히 요즘은 멋을 강조하고 실용성도 고려한 여러 형태의 개량한복이 나왔다. 여태껏 그 고상한 멋을 품었으면서도 실용성 때문에 우리 곁으로 다가오지 못했던 한복이었으니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이다. 그렇다면 명절이 아닌 평상시에도 여성들이 정장차림으로 나들이를 할 경우에는 양장대신 훨씬 더 품위 있는 개량한복을 차려입고 나서도 되지 않을까? 이 세상 그 어디에 우리 치마저고리처럼 멋스러운 나들이옷이 또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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