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가 노랗게 물들어 가는 어느 가을날에 지인의 가족 결혼식이 있어 예식장을 찾았다. 주차장이 만원인지라 곤욕을 치르다가 간신히 주차를 하였다. 예식장 입구에서 안내판을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을듯하다. 결혼식 일정이 점심시간을 전후한 시간에만 바듯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식이 끝날 무렵에 식권을 들고 대형식당으로 들어서려니 하객들이 북새통이다. 복도까지 길게 늘어선 줄 뒤에 서서 기다리다가 너무 지체되어 그냥 멀지 않은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점심시간에만 결혼식을 올리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예전 우리의 전통혼례식은 신부 집에서 올리고 신랑신부가 초야를 치른 후 다음날 시댁으로 가는 것이 관례였다. 특히 신랑은 초야를 치르기 전, 신부가 살던 마을의 청년들에게 호된 신고식을 치르기도 했는데 신랑이 마을에서 신부를 데려가기 전에 겪어야 했던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전통혼례식과 함께 지금은 사라졌으나 퍽 흥미로운 풍속이었다.
우리는 예로부터 결혼이나 초상 등 대사에 부조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부조란 잔칫집이나 상가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이웃친지들이 보내는 물건이나 돈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대사에 도움을 주려는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다. 그뿐이랴, 흔히 잘 차려진 상을 일컬어 잔칫상 같다는 말을 한다. 그 의미는 잔칫날이면 집주인이 먹을 것을 걸게 장만하여 이웃들에게 대접하는 풍습에서 찾을 수 있다. 거기에도 일을 도우려고 찾아온 이웃들에게 좀더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려는 주인의 정겨움이 오붓하게 담겨있다. 모두가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이다. 그와 같은 미풍양속의 좋은 의미가 시간이 흐른다고 변할 수 없으며 변해서도 아니 된다. 문제는 집이 아닌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초상조차도 장례식장에서 치르는 오늘날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는 것이다. 하객을 맞이하는 풍속도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결혼시즌 공휴일이면 예식장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주된 원인은 결혼식 일정이 점심시간을 전후한 시간에만 집중되기 때문이란다. 참석할 하객들을 위해 공휴일에 결혼식을 올리는 사정이야 어쩔 수 없을지라도 일정이 점심시간에만 집중되는 현상은 무엇 때문일까? 그 관습은 아마도 하객들에게 반드시 점심식사를 대접해야 한다는 혼주의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듯하다. 그러나 이제는 그와 같은 생각을 떨쳐버릴 때도 되었다. 오전이나 오후 어느 때를 막론하고 결혼식을 올린다면 예식장도 복잡하지 않고 좋지 않으랴. 만약 점심때가 아닌 시각에 결혼식을 올린다면 하객들에게는 식사대신 간단한 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리라. 어차피 식사라야 하객을 초빙한 혼주가 집에서 정성껏 장만하기 보다는 식당에 주문하여 준비한 음식들이다. 오늘날 먹을 것이 궁한 시절도 아니니 그 비용으로 선물을 준비한다 하여 하객들이 서운해 할 이유도 없다. 언젠가 필자도 점심때가 아닌 시각에 결혼식에 참석하여 우산을 받은 적이 있다. 마침 비가 내리는 날이어서 요긴하게 이용하였으며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결혼식 답례품이었다.
1980년대 후반 무렵으로 완도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광주(光州)의 어느 예식장에 하객으로 참석하게 되었는데 직장동료 대여섯 명이 축의금을 건네며 대신 전해주라는 것이다. 예식장에서 축의금을 전달하자 접수자가 웬 봉투를 축의금봉투 수만큼 내미는 것이다. 식권이려니 생각하고 한 장이면 된다고 하였으나 접수자는 거듭 식권이 아니므로 가져가라는 것이다. 의아해 하며 봉투 속을 들여다보니 이게 웬일일까. 축의금 액수는 1인당 2만원 정도였는데 봉투 속에는 현금 5천원권이 한 장 씩 들어있었다. 아마 점심 값으로 넣어준 모양이었다. 다음날 출근하여 축의금을 보낸 사람들에게 그 돈을 돌려줄까 생각하다가 같이 저녁식사를 하면 좋을듯하여 선심을 쓰는척하며 어느 식당으로 불러 모았다. 저녁식사가 한창일 즈음 슬그머니 그간의 경위를 설명하자 모두 박장대소를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시 예식장에서 받은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저녁식사비용을 지불해야 했지만 특이한 결혼식 답례품 때문에 야기된 재미있는 추억이 아닐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결혼식에 부조를 하고 참석한 하객들은 당일행사를 축하하고 대사를 치르는 혼주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하는 한결같은 마음뿐이다. 점심을 먹으려고 예식장에 참석할 하객은 없으리니 이제 점심시간에만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떠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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