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들[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셋째 형님의 아들 결혼식 날이다. 느지막이 꼭 아들을 낳겠다는 일념으로 얻었다. 형제 중 마지막 테이프를 끊었다. 그런 탓에 며느리들이 다 모였다.
시댁은 며느리가 여섯이다. 그중 나는 막내며느리이다. 형님들이 다섯이니 좋은 점도 많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내겐 모두가 형님들이니 무조건 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 ‘막내야’ 하고 부르면 대답만 잘해도 일단은 한 점은 먹고 들어간다. 형님들 앞에서 아는 체 해봤자, 입만 수고로울 뿐이다. 형님들이 세상 경험이 많기 때문에 나에게는 무엇을 결정할 기회를 주는 법도 드물다. 형님들이 모여서 무슨 말을 하든 굳이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적절한 의견을 낸다고 할지라도 위에서 맨 아래까지 순조롭게 내려 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형님들은 하나같이 덩치가 크다. 체격이 좋으니, 먹성 또한 왕성한 편이다. 며느리들은 먹는 음식 앞에서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며 화기애애하다. 젊은 시절에는 어마어마하게 장만한 음식들도 하룻밤만 지나면 푹 줄었다. 형님들과 먹는 음식은 무엇이든 맛이 있다. 시어머니가 땀 흘려 지은 깨와 참기름을 듬뿍 넣어 음식 맛을 낸다. 입맛이 없어 배가 훌쭉했다가도 형님들과 함께 어울려 음식을 먹고 나면 배가 볼록 일어났다. 형님들은 친정이 인근 지역 출신이고 보니 먹는 음식들도 비슷하다. 무엇이 맛있다고 하면 근방 행동으로 옮겨 양푼에 그들먹하게 장만했다. 형님들이 모이면 자신의 이름은 없고 첫째 아이의 이름이 자신의 이름이 된다. 만약 큰애 이름이 철수이면 형님들은 ‘철수야,’ 하고 부른다. 동서들 입장에서도 아이들 이름에 형님만 붙여 부르면 혼선이 없었다. 시댁 마당은 상당히 넓은 편이다. 그런데도 9남매나 되는 식구들이 다 모이면 마당이 작아 보인다. 명절에는 남자 형제들은 한쪽에서 윷놀이 하면 형님들은 짚단을 올려놓고 옛날 부엌 문짝을 떼어 널뛰기하고, 아이들은 장독대에서 놀았다. 그런 준비물도 남자들이 해주는 법이 없다. 시댁은 남자들이 여자들 요구에 귀 기울여 들어주는 편이 아니다. 제사 때 밤을 치는 일도 형님들이 했다. 지금이야 다 깎아진 것을 사서 하면 그만이다. 우리 집 남자들은 여자들의 체격만큼 좋은 사람이 없다. 키들도 여자들에 비해 아담한 편이다. 하긴 시어머니도 굳이 아들들을 시키는 법이 없다. 며느리들이 덩치가 크니 너희들이 하라며 힘쓰는 일도 며느리들을 부른다. 둘째 시숙님은 농촌지도소에 다니며 농기계 교육을 하면서도 경운기 운전을 제대로 못 했다. 경운기 힘에 밀렸다. 주말 농번기에 경운기 운전해 농사를 돕겠다고 나갔다가 빠져 식구대로 곤혹을 치른 적도 있다. 둘째 형님은 그런 시숙님께 농기계 교육을 하지 말든지 하고 불평하곤 했다.
며느리들의 한결같은 불만은 남자들이 집안에 못하나 박을 줄 모르며 무신경하다는 점이다. 집안에 나무를 베어내는 일도 여자들이 해 낸다. 우리 며느리들이 모이면 할 이야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웃을 일도 많다. 형님들과 일 년이면 한 번씩은 여행을 다녔다. 제사를 모신 후 파젯날 여행을 떠났다. 그러니 제사 모시는 일보다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큰 편이었다.
형님들은 여행지에서도 화투 놀이에 집착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화투 놀이에 필요한 담요와 화투는 막내인 내가 챙기게 가족법으로 정해 놓았다. 형님들은 여행지에서도 화투 놀이에 팔을 걷어붙이고 열을 올리며 날밤을 쇤다. 새벽녘이나 되면 잠을 잔다. 그러니 낮에 여행지를 둘러볼 때는 힘이 빠져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워한다. 줄곧 다리가 풀린 환자처럼 흐물흐물 한다. 그렇게 휘청거리다가 밤이 되면 또 기운을 얻어 화투놀이에 열을 올린다. 나야 그러거나 말거나 잠자는 일에 매달린다. 밤새워 화투 놀이를 한다고 할지라도 고작 몇천 원이나 몇만 원이 전부인 것을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계산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한쪽에서 잠을 자는 사람은 나뿐이다. 어쩐 일인지 다른 며느리들이 피곤하다며 누우려고 하면 무조건 불러 앉힌다. 그러는 법이 없단다. 죽어도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나는 왕따 인물로 배치해 놓은 모양이다. 형님들이 화투놀이를 하다가 크게 언성이 높아져 싸움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적도 있다. 약을 세는 법에 있어 뭐가 틀렸나 형님들이 언성을 높이는 통에 깜짝 놀라 일어난 적도 있다. 그때 맨 위 형님이 우리가 형제지간에 즐겁게 지내고자 하는 놀이에 그렇게 핏대를 세울 바에는 다시는 이런 짓하지 말기로 하자고 중재해 장작처럼 확 올랐다가 짚불처럼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이번 결혼식에는 다 시들했다. 언제 우리들이 뭉쳤냐 싶게 누울 자리를 살폈다. 심지어 결혼식이 끝난 후 그 자리에서 상경해 버렸다. 여행 계획은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도 다리가 아프니 그냥 여행이고 뭐고 취소하란다. 이젠 쪼그리고 앉아 화투 놀이를 하는 것도 힘에 부치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꽃구경도 그림의 떡이라며 희미한 웃음을 짓는다. 큰형님은 백발이다. 내년에는 제사에도 못 오겠다며 미리 인사를 한다. 집을 나서는 형님들의 뒷모습이 안짱다리처럼 휘었다. 세상은 가만히 있는데 육신만이 비행기를 탄 듯 떠나온 기분이다. 모두 잘 있으라, 흔드는 손이 부자연스럽다. 걷는 뒷모습이 흔들린다. 내 눈시울도 물기에 젖는다.
형님들이 활기차게 마당을 누비며 여행을 계획할 때가 왕성기였나 보다. 형님들의 그늘 속에서 살아나왔던 지난 시절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나왔지만, 한 부엌 식구라는 명분 때문에 의기투합하며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한 길을 잘 걸어 왔다. 가슴이 한 없이 넓었던 형님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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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들
김 미 셋째 형님의 아들 결혼식 날이다. 느지막이 꼭 아들을 낳겠다는 일념으로 얻었다. 형제 중 마지막 테이프를 끊었다. 그런 탓에 며느리들이 다 모였다. 시댁은 며느리가 여섯이다. 그중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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